7,125

<구원에 이르는 고통>救援 - 苦痛2

1984년 2월 11일 루르드의 성모 기념 축일에 교황 요 한 바오로 2세가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을 구원의 성년으로 선 포하면서, 구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고통의 의미를 성 찰하기 위해 이 서한을 발표하였다. 교황은 교회가 이 세 상을 순례하면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고 고통의 의미 를 구원의 의미로까지

<구원에 이르는 고통>
<그리스도교 교육 선언>敎 敎育宣言2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공포한 16개 문헌 중 교육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담은 문헌. 이 문헌은 공의회의 16개 문헌 가운데 내용이 가장 짧은 것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문헌의 길이가 짧다는 것이 공의회가 교육 문제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이 문헌이 짧은 현실적인 이유는 공의회의 폐막을 앞두고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

<그리스도교 교육 선언>
<그리스도의 신비체> 神秘體2

교황 비오 12세가 1943년 6월 29일 반포한 회칙. 교 회에 대한 여러 가지 오류와 그 오류의 결과들을 바로잡 기 위한 이 회칙은, 보다 넓은 시야로 교회 신비체 교의 에 관한 개괄적인 설명을 전개한다. 〔내 용〕 이 회칙은 신비체로서의 교회의 개념과 그 성 격들에 관한 논의에서 출발한다. 이 신비체는 불가분리 적이고 비가시적인 성격을 지니며, 유기체

<그리스도의 신비체>
<노동 헌장>勞動憲章2

교황 레오 13세가 1891년 5월 15일에 반포한 사회 회칙. 레룸 노바룸( '새로운 사태' 라는 뜻)이라는 이름은 회 칙의 첫 두 낱말을 따서 부친 것이며, 우리 나라에서는 또는 라고 부르고 있다. '노동 조건에 관하여' (De conditione opificium)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회칙은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노동자들의 비 참상에 대한 사

<노동 헌장>
<노동하는 인간>勞動 - 人間2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첫번째 사회 회칙. 교황 레오 13세의 반포 9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문헌. 1981년 9월 14일에 반포되었고, 우리말로 된 번역본은 1983년 12월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발행하였다. 5 장(서론, 노동과 인간, 역사의 현단계에서 노동과 자본의 투쟁, 노동자의 권리, 노동의 영성) 27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 다. 〔주 제〕

<노동하는 인간>
<누갈다 초남이 일기 남매>- 草南 - 日記男妹3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순교한 이경도(李景 陶, 가롤로)와 이순이(李順伊, 루갈다) 1827년 정해박 해(丁亥迫害) 때 순교한 이경언(李景彥, 바오로) 남매가 남긴 옥중 서한과 일기 자료집. 1965년 교회사가 김구 정(金九鼎)이 1866년 경남 울산에서 순교한 김종륜(金 宗倫, 루가)의 후손 집안에서 필사한 사본을 발견함으로 써 세상에 알려지게

<누갈다 초남이 일기 남매>
<대구매일신문> (⇨ <매일신문>)大邱每日新聞3
<대학> (⇨ 사서오경)大學3
<동방 교회에 관한 교령>東方敎會 - 關 - 敎令3

동방의 전례를 준수하는 교회들(동방 교회)에 관한 제2 차 바티칸 공의회의 공식 교령 문헌. '동방 교회' 에 관하 여 이들 교회의 쇄신을 촉구하고, 간접적으로는 로마 가 톨릭에서 갈라진 동방 교회들에 접근하면서 일치된 관계 를 촉진하기 위해서 공포되었다. 여기서 전례(nitus)란 교 령 제3항에 설명되어 있듯이 이들 교회의 특유한 전례 (hiturgia

<디비노 아플란테 스피리투> 3

1943년 9월 30일, 교황 비오 12세가 발표한 성서 연구에 관한 회칙. 〔배 경〕 예수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메시아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신앙 공동체는,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이고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는 성서의신적(神的) 권위를 인정해야만 한다. 나아가 성서 안에서, 인간 역사 속에서 역사(役事)하는 하느님의 손길을찾아야 하고 더불어

<디비노 아플란테 스피리투>
<디비니 레뎀토리스> 3

1937년 3월 19일 공산주의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밝힌 교황 비오 11세(1922~1939)의 회칙. 비오 11세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세계의 위기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의 평화 추구 를 교황직의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하여 국제 문제에 대한 교황청의 활동을 강화하였으며, 소련의종교 박해를 종식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온갖 노력이 무위로

<디비니 레뎀토리스>
<디비니 일리우스 마지스트리>3

1929년 12월 31일에 발표된 종교 교육을 강조한 비오 11세 교황(1922~1939)의 회칙. [배 경] 교황 비오 11세는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통한"그리스도의 평화 추구"를 교황직의 목표로 삼고, 즉위하자 곧 국제 문제에 관한 교황청의 활동을 강화하였다.또한 교황청과 세속 국가들 사이의 정교 조약 또는 협약을 여러 차례 맺는 등 세계 평화를 위하여

<디아테사론> (⇨ 타시아노)3
<디우투르눔 일룻>3

1881년 6월 29일 국가 권력에 대한 입장을 밝힌 교황 레오 13세(1878~1903)의 회칙. 〔배 경〕 보기 드문 학자요 탁월한 지도자였던 교황 레오 13세는, 교황으로 즉위하자 천부적인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여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화해 정책을 추진하였다. 당시는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 그리고 19세기 자유주의 사조로 인하여 교회

<라멘타빌리>3

성서와 신학에서의 근대주의가 주창한 65개의 특징적인 명제들을 단죄한 1907년에 발표된 반(反)근대주의 교령. 〔배 경〕 교회는 19세기 말 교황 레오 13세(1878~1903)의 노력으로 가톨릭의 문예 부흥이라고 할 만한 성과들을 이루었다. 레오 13세는 신학은 물론 사회 개혁, 정치의 민주화, 과학 연구 등에서 가톨릭의 지도력을 적극 모색하고 권장하였

<레룸 노바룸> (⇨ <노동 헌장>)4
<로마 미사 전문> (⇨ 감사의 기도)- 典文4
<로쎄르바토레 로마노> (⇨ <옷세르바토레 로마노〉)4
<리마 문서> - 文書4

세계 교회 협의회(W.C.C.) 산하의 '신앙 직제위원회'(Faith and Order Commission)가 1982년 1월 페루의 리마(Lima)에서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도모하기 위해 채택·발표한 세례, 성찬 및 교회 직무(敎會職務)에 관한 문헌 (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 Faith and Order paper No.11

<마테르 엣 마지스트라> (⇨ <어머니와 교사>)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