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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1200년경 사이에 서유럽 전역에서 꽃피웠던 건축을 중심으로 한 회화, 조각상의 예술 양식.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한동안 혼란했던 유럽이 10세기에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수도원 제도가 크게 발전한 결과로 생겨났다. '로마풍' 이라는 뜻을 지닌 이 로마네스크 양식은 로마의 양식을 기초로 하고 있으나 카롤링거 왕조, 오토 왕조

전례력에는 로마노라는 이름의 성인이 많은데, 특히 고대와 중세에 이 이름을 가진 성인들이 많았다. 성 라우렌시오의 행전에는 258년에 로마의 비아 티부르티나(Via Tiburtina)에서 순교한 로마노(축일은 8월 9일)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는 디오클레시아누스 때 안티오키아에서 순교한 체사 레아의 로마노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초기의 소도시 국가에서 대제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제정되어 변모되어 간 고대 로마의 법. 초기의 관습법 상태로부터 출발하여 문명 사회의 법의 발전 단계를 고루 거쳐 성문 법전이 제정되기까지를 총칭한다. 그러나 흔히 이러한 어의적인 의미가 아니라,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Jusiniaus, 483~565)가 제정한 이른바 《로마법 대전》(Corp

수사. 독일 상트 오틸리엔 베네딕도회 회원. 세례명 에우세비오. 한국명 노안락(盧安樂). 1879년 2월 12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교구의 메링에서 태어나, 1920년 4월 5일 상트 오틸리엔의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종신서원을 한 후 1924년 3월 20일, 필리핀 디날루피한의 상 베니토로 파견되었으나 얼마 안되어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신약성서 정경에 속하는 바오로의 14개 서간 중 가장 긴 서간. 이 서간은 바오로 사도의 생애 완숙기에 작성되었고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풍부한 체험과 성숙한 신학적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친저성] 극소수의 학자들을 제외하고 바오로 사도가 로마서의 저자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아마도 로마서의 친저성(親著性)을 최초로 증언한 사람은 마르치온(Marcio

독일 상트 오틸리엔의 베네딕도 수도회 회원. 덕원(德源) 면속구 선교사. 세례명 안셀모. 한국명은 노병조(盧炳朝). 1885년 12월 7일 독일에서 태어나 1911년 5월 3일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서품 후 곧바로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같은 해 12월 11일에 입국하였다. 입국 후 언어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당시에는 독한(獨韓) 문법책과 사전이 없어 한국

산 살바도르 대주교. 1917년 8월 15일 엘살바도르 산 미구엘(San Miguel)의 치우다드 바리오스(Ciudad Barrios)에서 산토스 로메로(Santos Romero)와 과달루페 데 헤수스 갈다메스(Guadalu-pe de Jesus Galdamez)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1919년 5월 11일 유아 세례를 받고, 1930년 글라라 수녀회

성인. 카말돌리회(Camaldoli)의 설립자. 축일은 6월 19일. 이탈리아 라벤나에서 세르지오라는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20세 되던 해 친척을 살해한 그의 아버지 대신 속죄하기 위해 클라세(Clase)에 있는 산 아폴리나레 (San Apollinare) 수도원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성 아폴리나리오의 환시를 본 후에 수도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바오로.한국명은 김보록(金保祿). 1853년 프랑스 오트 손(Haute-Saône)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소신학교를 거쳐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다. 그곳에서 두세(Doucet,丁加彌) 신부와 뮈텔(Mutel, 閔德孝) 신부와 함께 공부하였으며, 1876년 12월 23일 사제로 서품된 뒤, 이듬해 한국

성인. 대수도원장. 축일은 4월 29일. 1027년경 프랑스 중부 트루아(Troyes)에서 태어나 15세 때 디종(Dijon) 근처 무티에 라 셀(Moutierla-Clelle)에 있는 베네딕도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로베르토의 생애는 11~12세기 서양 수도원 제도의 동요와 부흥을 아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데, 그는 물질적 부유함으로 인해 수도 정신이 해
페루의 수호 성인. 축일은 8월 23일. 1586년 4월 20일 페루 리마의 스페인 가문에서 태어나 이사벨 데 플로레스(Isaheldel de Flower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데 아기가 마치 장미꽃처럼 아름다워 세례명 대신에 로사(Rosa)라고 부르게 되었고, 열네 살 때 이 이름으로 견진성사를 받았다. 후에는 그녀의 일생에 끼친 동정 마리아의 역

개인과 가정 성화, 인류 구원과 세계 평화를 위하여 묵주 기도를 바치는 달. 10월이 로사리오 성월로 설정된 것은 1883년 9월 1일에 발표한 교황 레오 13세(1878~1903)의 회칙 (Supremi Apos-tolatus)를 통해서였다. 〔설정 동기] 로사리오 성월을 10월로 설정한 것은 로사리오 축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6세기에 교회가 분열된

이탈리아 팔레르모(Palemmo)의 수호 성인. 축일은 9월 4일. 성녀에 대한 자료들 중에서 1624년 이전에 쓰여진 것들은 거의 전설에 불과하다. 로살리아 자신이 쓴 것으로 여겨지는 비문은 그녀의 시신이 발견된 이후 40일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이 비문과 전설에 따르면, 성녀는 퀴스퀴나(Quisquina)의 영주인 시니발디(Sinibaldi) 백작과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양식 조각가이자 건축가. 1409년 세티냐노에서 태어나 브루넬레스키(Brunelleschi)에게서 훈련을 쌓고 루카 델라 로비아(Luca della Robbia)와 기베르티(Ghiberti)의 영향을 받았다. 1436년경 피렌체에 정착한 로셀리노는, 뛰어난 인문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레오나르도 브루니(Leonardo Bruni)가 1444년

신부. 수도회 창립자. 철학자. 신학자. 정치가. 1797년 이탈리아 로베르토(Roverto)에서 완고한 아버지 베드로 로스미니(Pieto Rosmini)와 지적이면서 정이 많은 어머니 조반나(Giovanna dei Conti)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약간 폐쇄적이지만 평온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6세 되던 1813년에 가족들의 기대와는 달리 사제가 되기를

수녀. 작가. 독일 최초의 여류 시인. 신성 로마 제국 오토 1세의 조카딸로서 오토 왕가에서 운영하는 부라운 슈바이크 근교의 베네딕도회 소속 간데르스하임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그곳 수녀원장 게르베르가(Gerberga)로부터 신학과 문학을 공부하였으며, 만년에는 수녀원 원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오토 1세를 찬양하는 서사시 (Carmen de gestis 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