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7,125건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나타내는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 나. 사랑은 하느님의 인간과의 관계, 인간의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연관시켜 서술하는 데 사용되는 공통어이다.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한다. 따 라서 인간은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며 또한 그 이웃을 사 랑해야 한다. 즉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종교적 사랑과 인간

1950년 10월 7일 캘커타(Calcutta)의 데레사(1910~ 1997) 수녀가 가장 가난한 이들과 가난한 삶을 함께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한 수녀회. 이처럼 데레사 수녀에 의 해 설립되어 같은 정신으로 생활하는 수족(修族)으로는 '사랑의 선교 수사회' (1963)와 '협력자회' (1969), , '사랑 의 선교 관상 수녀회' (1976), , '사랑

1963년 3월 25일 캘커타(Calcutta)의 데레사(1910~ 1997) 수녀가 가장 가난한 이들과 가난한 삶을 함께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한 수사회. 초대 총장이었던 앤드류 (1928~ ) 수사가 공동 설립자이다. 총본부는 인도 캘커 타의 만사탈라(Mansatalla)에 있으며, 한국 관구는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05-21번지에 있다. 〔설립과 세

미국인 최초의 성인 시튼(Elizabeth Bayley Seton, 1774~ 1821)이 자선과 교육 사업을 목적으로 1809년 3월 25일 메릴랜드(Maryland) 주 에미츠버그(Emmitsburg)에 설립 한 미국 최초의 수녀회. 한국에 진출한 수녀회는 연방 체 제로 구성되어 있는 사랑의 씨튼 수녀회 중에서 미국 그 린스버그(Greensburg) 씨

시돈(Sidon)에서 남쪽으로 13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페니키아의 한 도시. 사렙다는 '정제하다' 또는 '붉게 염 색하다' 라는 의미의 페니키아어 동사 '짜라프' (צרף)에 서 유래하였다. 성서에서의 사렙다는 오늘날 레바논의 시돈과 티로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근처 마을의 아랍 어 지명이 사라판드(Sanfand)로 불리고 있어 옛 지명을 보존하고 있

유교적 원리에 바탕을 둔 관례(冠禮) · 혼례(婚禮) · 상례(喪禮) · 제례(祭禮)를 일컫는 말. 유교 의례는 적용 범위에 따라 국가 의례〔國朝禮〕 · 학교 의례〔學禮〕 · 향 촌 의례〔鄕禮〕 · 가정 의례(家禮)로 구분되는데, 중국과 조선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 유교 사회에서는 가정 의례 가 가장 일반화되어 있고, 이의 표준이 《주자 가례》(朱子 家禮)이
이스라엘 서쪽 지중해안과 동쪽 산악 지대 사이에 위 치한 해안 평야 중의 한 부분. 〔지리적 배경〕 사론 평야의 남쪽으로는 불레셋 평야가 이어지는데, 이 둘 사이의 경계는 샘에서 흐르는 상시천 이자 전통적으로 남북으로 이어지는 소위 '해변의 길' (Via Maris)을 가로막는 야르콘(Yarkon) 강이다. 사론의 지리적인 북쪽 경계는 해발 300~400m

영국 솔즈베리(Salisbury) 교구 주교좌 성당을 중심으 로 영국에서 발전된 전례. 그레고리오 1세 교황(590~ 604)이 전례를 확립하면서 서방 전례는 7세기 초부터 급 속히 전 서방 교회로 확산되었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각 나라나 지방, 또 교회적으로는 교구나 관구에 따라 조금 씩 변형 적용이 허용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오늘날에도 인정되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역사에 등장하는 3명의 왕. 사르곤은 아 카드어로 '샤루-킨' 인데 '합법적인 왕' 이라는 의미이다. 첫 번째 왕은 아카드(Akkad)의 사르곤(기원전 2334~ 2279)이고, 두 번째 왕은 기원전 2000년경에 다스렸던 아시리아의 왕 사르곤 1세이며, 세 번째가 성서에 언급 된 신아시리아 제국의 사르곤 2세(기원전 722~705)이다. 사르

스미르나와 에페소에서 동쪽으로 100km 지점에 있는 리디아 왕국(기원전 680~547)의 수도. 살리흘리(Salihil) 읍내를 지나 사르디스에 도착하면 국도 오른편으로 193 ~235년에 세워졌던 웅장한 실내 체육관이 보이는데, 다 무너진 이 체육관을 하버드 대학과 코넬 대학 고고학 팀이 1965~1973년에 발굴하여 복원한 것이다. 체육관 옆에는 사르

프랑스의 문필가. 철학자.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대표자. 〔생 애〕 1905년 6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나 어려서 아 버지를 여의고 외할아버지 집에서 성장한 사르트르는, 대체로 불안정하고 불행한 어린 시절을 주로 독서와 글 쓰기에 전념하였으며 1929년에 고 등 사범 학교(Ecole Normale Supérieure) 를 졸업한 후 1931년부터 교편을 잡아

불교에서 석가모니나 고승 대덕(高僧大德)의 유골을 지칭하는 용어. 본래 시체나 유골을 뜻하던 산스크리트 어 샤리라(sarra)의 음역으로 실리(實利), 설리라(設利 羅), 실리라(室利羅)라고도 쓰며, 의역으로는 신체, 신 (身), 신골(身骨), 유신(遺身) 등으로 번역된다. 《현응음의》(玄應音義) 제6에 따르면 사리는 크게 전 신 사리(全身舍利)와 쇄신 사

서울대교구 소속 침묵의 본당. 황해도 사리원시 북리 103 소재. 1916년 6월 매화동(玫花洞) 본당 관할 공소 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가 1950년 11월에 폐쇄되었다. 〔교 세〕 1916년 870여 명, 1922년 1,356명, 1937 년 1,300여 명, 1944년 1,284명. 〔역대 신부〕 초대 이 기준(李起俊) 토마스(1916. 6~1923.

학문하는 선비들을 뜻하는 보통 명사. 이 말은 고려 말 에서 조선 초까지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다가 사화기(士 禍期)에는 훈신(勳臣) · 척신(戚臣)에 대립하는 신진 관 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이들이 정치의 주도권을 잡게 된 16세기 말 이후부터는 과거에 합격하 여 관작을 받은 양반 관료를 뜻하는 사대부(士大夫) , 또 는 사대부를 배출하는 집

기원전 890년경부터 북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건설 되었던 도시. 후에는 므나쎄 지파와 에프라임 지파 지역 전체를 일컫던 북이스라엘 왕국과 동일시된 지역 이름이 기도 하다. 〔도시의 유래와 역사〕 사마리아라는 도시 이름은 본래 이곳의 땅 주인 이름인 세메르(שֶׁמֶר)에서 유래되었으며, 히브리어로는 '쇼므론' 이라고 불렸다. 북이스라엘의 오 므리(기원전

사마리아인 전 공동체의 경전. 사마리아인들은 오직 구약성서의 오경만을 그들의 유일한 경전으로 여기는데, 이를 '사마리아 오경' 이라고 한다. 단편들까지 합쳐서 모두 150여 개의 두루마리들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 으며, 가장 최초의 것은 9세기경에 기록된 것이고 대부 분은 14~15세기 것들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오늘날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꼽히는 사

기원전 721년부터 아시리아가 사마리아 지역을 침공 한 후 대량 이주 정책을 펼치면서 포로로 잡혀 가지 않은 유대인들의 후손들. 〔기원과 역사〕 사마리아인들의 역사관에 의하면 사무 엘 시대에 엘리 사제가 성소를 세겜에서 실로로 옮김으 로써 세겜 중심의 사마리아인들과 실로 중심의 이스라엘 민족이 분리되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사적 으로 사마리아인들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마지막 네 가지 문제로 죽음, 심 판, 천당, 지옥을 뜻하는 용어 . 가톨릭 신학에서 인간의 마지막 문제에 대한 교리는 인간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문제를 반성하도록 만들었 다. 그래서 종말론(eochataology)에서는 인간이 죽은 후에 도 살아 있다고 단언하면서, 인간의 죽음, 사심판(私審 判)과 공심판(公審判) 그 결과에 따른 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