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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천주교 신자. 세례명은 마태오. 본관은 전주(全州). 이순이(李順伊, 루갈다)의 아버지. 지봉(芝峰) 이수광(李睟光)의 8대손. 성호(星湖) 이익(李翼)의 문하에서 이승훈(李承薰, 베드로) · 김원성(金源星) 등과 수학하였으며, 천진암 · 주어사 강학회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1785년(정조 9) 을사 추조 적발 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이 발생했을 때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황해도 백천(白川) 출신으로 의업(醫業)에 종사했다. 1857년에 상경(上京)하여 차동(車洞)에 거주하며 정의배(丁義培, 마르코)에게 교리를 배웠고, 1859년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 교리책과 묵주, 십자패 등을 만들어 보급하였고, 이덕보(李德甫, 마태오)와 함께 황해
조 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자신(自新), 호는 성호(星湖). 관계 진출을 단념하고 근기(近畿) 지방인 안산(安山)에서 살면서 학문 연구에만 전념하여 실학을 발전시켰다. 그의 문하에서 많은 제자들이 배출되어 그의 실학을 계승 발전시킴에 따라 성호학파(星湖學派)가 형성되었으며, 이들 성호학파의 인물들은 훗날 천주교 수용을 주도하였

성녀(聖女). 동정녀(童貞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마리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서울의 매우 가난한 양반인 외교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성녀 이영덕(李榮德, 막달레나)의 동생이다. 그녀의 외할머니가 의탁할 데가 없어 그녀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는데, 매우 신앙심이 깊은 신자였다. 그녀는 외할머니의 전교로 언니 이영덕과 어머니 조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욥. 그의 이름은 태문(太文)으로도 나오나 흔히는 안의(安義) 이씨(李氏)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충청도 홍주(洪州)의 대벌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 이점손(李占孫)에게 천주교를 배워 신유박해(辛酉迫害) 이전부터 수계 생활을 하였으며,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옥에 갇혔다가 경상도 안의로 귀양
타인이나 어느 기관의 신용 또는 화폐를 사용한 대가로 지불하는 가격. 소득의 한 형태이기도 하며 채무 증서를 소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소득이다. 〔고대와 성서의 규정〕 고대 세계에서 차용인은 원금과 추가 부담금, 즉 이자를 갚도록 되어 있었다.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은 외국인들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 일이 허용되었으나, 같은 유대인들에게 그렇게 하는
순교자. 세례명은 토마스. 본관은 평창(平昌). 강원도 정선 출신. 한국 최초의 천주교 영세 신자였던 이승훈(李承薰, 베드로)의 손자이며, 이택규(李宅逵)의 아들. 이승훈의 세 아들(宅逵 · 國逵 · 身逵) 가운데 아버지 이택규와 작은아버지 이신규가 천주교를 신봉하여 그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천주교를 믿었다. 정하상(丁夏祥, 바오로)과 반년 정도 같이 지내면
원산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드로. 1913년에 태어나 덕원 신학교를 졸업하여 1940년 3 월 25일 사제 서품을받았다. 이재철 신부는 1945년 9월 청진 본당 의 바인거(M. Bainger,마르코) 신부가 병사하자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으며, 함흥과 덕원 면속구의 대부분의 신부들이 북한 정치 보위부에 체포되었을 당시 그때를 면했기 때문에 한국 전쟁 이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안드레아. 그의 이름은 '종일' 로도 나온다. 충청도 홍주(洪州) 출신으로 성질이 끗끗하고 바르고 관대하여 모든 이가 우러러보고 존경하였다. 20세가 넘어서 입교한 그는 고향에서 자유롭게 천주교를 받들고 실행할 수 없음을 깨닫고 집안과 재물과 이웃을 버리고 가족들과 함께 산골에 은거하였다. 그 뒤 여러 고장으로 다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1909년 5월 9일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낙양면(樂壤面) 내락리(內洛里) 속칭 냉골 마을에서 아버지 이영환(아우구스 티노)과 어머니 김 마리아 사이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서당 훈장이던 아버지에게서 한학을 배우며 자랐고, 강원도 이천의 포내 본당 부이수(P. Bouyssou, 孫以燮) 신부의 추천으로 용산 예수성

평양교구 신부. 세례명은 알렉시오. 1919년 4월 황해도 안악군 문산면 원성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 이태환(李泰煥, 시메온)은 전주(全州) 이씨로 병인박해(丙寅迫害)때 양화진(楊花津)에서 순교한 의안대군(宜安大君)의 17대 손인 의송(義松, 프란치스코), 붕익 (鵬翼, 프란치스코, 의송의 아들), 천조(天祖, 바오로, 의송의 손자), 김어분(金於忿
순교자. 세례명은 요한. 일명 순식(淳植). 본관은 경주(慶州). 부산 동래 출신. 언제부터 동래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의 선조 때부터 거주해 온 것으로 보인다. 무임(武任) 가문 출신으로 부친 이재한(李載漢)은 장관청(將官廳)의 초관(哨官)을 거쳐 파총(把撩)과 천총(千揀)을 역임하였다. 이정식은 동래 장교(將校)였다가 무과(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바르바라.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성녀 허계임(許季任, 막달레나)의 딸이며, 성녀 이영희(李榮喜, 막달레나)의 언니이고, 성녀 이매임(李梅任, 데레사)의 조카이다. 경기도 봉천(奉天, 현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의 양반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20세에 과부가 되어 친정 집으로 돌아온 고모 이매임의 가르침

초기 교회 신자. 충청도 내포(內浦) 지방의 사도. 일명단원. 세례명은 루도비코 곤자가. 1759년 예산군 신암면 여사울(餘村, 新宗里)에서 양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신분에 대해서는 상천(常賤), 혹은 관교(官校)라고 기록한 문헌도 있다. 이존창은 1776년부터 이총억(李寵億)을 따라 권철신(權哲身, 암브로시오)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는데, 1784년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1874년 4월 3일에 태어나, 1884년 7월 10일 페낭에 도착하여 신학교에 들어갔다. 1890년 11월 25일 페낭을 출 발하여, 용산 예수성심 신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한 후, 1899년 10월 1일 뮈텔(G. Mutel, 閔德孝) 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서품 직후인 10월 9일 갓등이(현 왕림) 성당의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1885년 9월 28일 충남 서산군 음악면 상홍리 속칭 가재 마을에서 아버지 이 안드레아와 어머니 이 마리아 사이에 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그곳의 공소 회장인진 야고보로부터 대세를 받았으며, 충청도 홍주에 근거를 두고 전교 활동을 하던 두세(Doucet, 丁加 彌) 신부로부터 보례를 받았고, 양촌(현 구합덕) 본당의 퀴

대구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마티아. 1895년 1월 12일 전북 완산군 운선면 승치리에서 태어났다. 1911년 9월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여 1914년 6월 소학과를 수료한 후, 9월 20일 그 해 가을에 개교된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중등과에 입학하여 1917년 9월 대학과로 진학, 1922년 9월 졸업한 뒤 대구 계산동 주교좌 본당에서 드망즈(F

조국이나 개별 교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움직이는 사람들"을 위한 사목적 연구와 배려를 하는 교황청 소속의 평의회. 정식 명칭은 '이민자와 여행자들을 위한 교황청 사목 평의회' 이다. 이 평의회가 대상으로 하는 "움직이는 사람들"은 망명자 · 피난민 · 유랑민 순례자 · 여행자 · 선박 · 항공 · 도로 운송에 종사하는 자들은 물론, 국제적 차원의 연구
1971년 6월 24일 주교 회의 '해외 교포 사목부' 로 설립하여 1981년 10월 16일 주교 회의 '이주 사목위원회' 로 개칭하였다. 위원장, 총무, 해외 교포 사목부, 관광 사목부, 국내 외국인 사목부, 해양 사목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주교들의 교회 사목직에 관한 교령〉 제2장 18항 특수 환경의 사목(1965. 10. 28)과
어떤 정당한 목적을 위한 행위를 하는 가운데 결과적으로 물리적인 악(惡)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이 악이 허용될 수 있다는 원리. 〔의미와 조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인간 행위에서 선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행위의 수단이 악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물리적인 악(惡)이 생기는 경우도 있는데, 과거부터 윤리 신학자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