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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충청도 덕산(德山) 황모실(충남 당진군 고덕면 호음리)의 부유한 양민(良民)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꿋꿋했지만, 약간은 고집스러워 친구들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아이였다.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제멋대로 생활을 하다가, 20대 초반 황심(黃沁, 토마스)에게 교리를 배우고 입교하였다. 입교 후 이전과는 달리 단정한 처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1893년 4월 20일 황해도 수안군 사창리(社倉里)에서 태어나 용산 예수성 심신학교를 졸업하고 1921년 6월 12일 사제 서품을 받은 후에 주교관에 설치된 시복 조사회(諡福調査會) 비서관으로 재직하였다. 그 뒤 강원도 원주(1922~1923. 5) 황해도 은율(1923. 5~1928. 5) 신계(1928. 5~1933.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1905년 8월 15일 충북 단양군 단양면 하방리(下坊里)에서 태어난 이복영 신부는 1917년 용소막 본당 주임 시발레(Chizallet, 池士元) 신부의 권유로 13세 때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여 1930년 10월 26일 명동 성당에서 노기남(盧基南,바오로) 대주교로부터 윤형중(尹亨重) 신부, 방유룡(方有龍) 신부,
신유박해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충주 출신으로 이기연(李箕延)의 전교로 아들 이석중(李石中)과 함께 입교 하였다. 충주에서 아전 노릇을 하던 그는 입교 후 친지와 이웃들에게 전교하는 한편, 주일마다 신자들과 함께 모 임을 가졌으며,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제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 결과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된 뒤, 10 월 4일 68세의 나이로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치명일기》 등에 '바오로' 로 나오나 그의 형과 누이 등의 증언과 《우포도청등록》(右捕盜廳謄錄)의 기록으로 볼 때 '베드로' 가 맞다. 그의 이름은 '천조' 로도 나온다. 황해도 신천(信川) 출신인 그는 1857년에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 차동에서 살았다. 그의 아버지 이의송(李義松,프란치스코, 일명 이여정
아브라함이 100세 때 부인 사라에게서 얻은 아들로서, 아버지 아브라함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의 제2 대 성조가 된 인물. 리브가와 결혼하여 쌍둥이 아들 에사오와 야곱을 두었으며, 야곱은 제3대 성조가 되었다. 성서 전체를 통틀어 볼 때 3명의 성조 중 이사악이 언급되는 부분이 가장 적다. 그의 생애가 언급되어 있는 창 세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아브라함

성인. 은수자. '몬테 루코(Monte Luco)의 이사악' 이라고도 불린다. 축일은 4월 11일(스폴레토에서는 4월 15일)이다. 〔생 애〕 시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그리스도 단성설을 추종하는 이들(monophysites)의 박해를 피해 이탈리아의 스폴레토 외곽에 있는 몬테 루코(Monte Luco)의 동굴로들어가, 50년 동안 은수자로 생활하였다. 그는
구약성서의 예언서 중 제일 먼저 등장하고 이사야라는 예언자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총 66장으로 구성된 예언서. 이 예언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한 예언자의 것으로 볼 수 없는 다양한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이사야 서가 한 예언자의 말을 중심으로 구성된 한 권의 책이냐, 아니면 여러 예언자의 신탁을 수집해 놓은 여러 권의 책이냐 하는 특수하고도 중요한

성령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현재 세계 내 어느 곳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여 말하는 해석의 은사를 받은 사람 외에는 그 뜻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말. 성령의 은사 쇄신 운동에서 성령 세미나를 통하여 체험하는 은사이다. 이 이상한 언어의 은사는 성령 안의 생활과 모든 은사 활용에 있어서 기초가 되는 은사로 다른 봉사 은사를 받거나 사용하는 데 도움을

전주교구 신부.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1918년 11월 12일 전북 완주군에서 출생.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하여 1944년 12월 23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화산 본당 3대 보좌(1945.1~7), 석동(현 용안) 본당 4대 주임(1945. 7~1947. 4), 수분리(현 장수) 본당 6대 주임(1947. 4~1948. 8), 금산(錦山) 본당

전주교구 신부. 세례명은 바르톨로메오. 1876년 6월 23일 충남 부여군에서 태어나 1895년 용산 예수성 심신학교에 입 학 ,1908년 12월 19일 사제 서품을 받고 경기도 양평 능말 본당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전북 안대동(현 함 열) 본당 2대 주임(1911. 5~1913. 4), 경남 함양 본당(1913. 4~1918. 2)을 거쳐 진안 어은동(현
언론인 · 소설가 · 극작가 · 연출가. 세례명은 요한. 호는 고범(孤帆) 또는 고성(孤星). 1899년 4월 5일 서울에서 출생하여 경성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0년 〈동아일보〉의 창간과 함께 사회부 기자로 입사하였고, 1921년 〈조선일보〉 도쿄(東京) 특파원을 맡았으며, 1922년 도쿄 니혼(日本) 대학 예술과를 중퇴하였다. 1923년 박승
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알 수 없다. 충청도 충주에서 아전 노릇을 하던 이부춘(李富春)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기연(李箕延)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입교한 그의 아버지는 어느 정도 학식도 있고 언변과 인물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는 집안 사람들로부터 이웃 마을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남녀 노소를 입교시켜 곧 우두머리가 되었다. 이러한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1897년 충남 합덕에서 태어났으며, 1926년 5월 용산 예수성심 신학교를 졸업하여 사제 서품을 받았다. 사리원 본당 보좌로 사목 활동을 시작하여 장연 본당의 보좌를 거쳐 1934년 8월 매화동 본당 6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다음해인 1935년 6월 20일 황해 · 강원 · 평안도 등지의 신부 10여 명과 2천여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1947년 6월 7일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으며 서라벌 고등학교와 가톨릭대학 신학부를 졸업 한 후 1977년 12월 8일 명동 대성당에서 경갑룡(景甲龍, 요셉) 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돈암동 보좌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그 후 홍제동 본당 보좌를 거쳐 교구장 비서를 한 후 1981년 2월 왕십리 본당 보좌로

정신적인 능력 전체. 감각적인 지각 능력과는 다르다. 이지(理智) · 이해 · 사고 · 판단 · 지각 · 분별 · 양식(良 識) · 도리 · 합리성 · 현명 · 이유 · 까닭 · 동기 · 근거 · 견해 · 의견 · 의도 · 계획 · 생각 · 지식 · 이론 · 학설 · 주의(主義) · 철학 · 학문 체계 · 개념 · 이념 · 논거 · 논증 · 추리 · 추론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마리아. 《일성록》(日省錄)에는 이름이 성례(性禮)로 표기되어 있다.성인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의 아내이며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의 어머니이다. 충청도 홍주(洪州)에서태어난 그녀는 내포의 사도 이존창(李存昌, 루도비코 곤자가)의 사촌 누이인 이 멜라니아의 조카딸이었다. 18세 때 최경환과 결혼하여 남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