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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축일은 9월 20일. 동정녀(童貞女). 성녀 이정희 (李貞喜, 바르바라) · 이영희(李榮喜, 막달레나)의 조카 이다. 경기도 시흥 봉천(奉天, 현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의 양반 집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서울로 와서 이모인 이영희 · 이정희를 의지하고 살았다. 1839 년 기해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나자, 15세의 어린 나이 로 이모들과
① 이 아가타(1784~1839) : 성녀. 축일은 9월 20일. 성인 이호영(베드로)의 누나. 경기도 이천(利川)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외교인과 결혼했으나 3년 만에 남편을 잃고 친정으로 돌아와 모친 · 동생과 함께 입교하였다. 부친이 사망한 후 서울로 이주한 아가타는 1835년 2월 한강변 '무쇠막' 에서 동생 이호영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녀는 포청

조선 후기 정조 연간의 뛰어난 학자이자 정치가. 호는 금대(錦帶) · 정헌(貞軒), 자(字)는 정조(廷藻)이다. 본 관은 여주(驪州)로서, 원래 여주 이씨가 대대로 거주했 던 서울 서대문 근처인 정동(舊貞陵港)에서 태어나고 성 장하였다. 조선 후기 경기도 지역 남인이자 대실학자인 성호 이익 집안의 학통을 이은 정산 이병휴(貞山 李秉 休)와 혜환 이용휴(惠寰

성녀.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아가타. 서울의 외교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18세에 결혼하였다가 3년 후에 과부가 되었다. 이 시기 천주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입교한 뒤 유 파치피코(본명은 余恒德)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고, 이후 시어머니와 집안의 다른 식구 2명을 입 교시켰다. 1846년 6월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가 체포되자 현석문(玄錫

주교. 제2대 부산교구장. 세례명은 가브리엘. 1924년 2월 29일 경북 영천에서 이능호(李能皓, 가시미로)와 최순이(崔順伊, 루피나)의 3남 4녀 중 3남으로 출생. 1938년 영천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소신학교 과정인 동성 상업학교 을조를 거쳐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재학 하였으나, 1945년에 학교가 폐교되고 일제에 의하여 일 본군에 징병되어 광복이

순교자. 세례명은 가롤로. 아명(兒名)은 오희(五喜). . 본관은 전주(全州). 이윤하(李潤夏)의 장남이며, 권철신 (權哲身, 암브로시오)의 생질, 이순이(李順伊, 루갈다) 의 오빠이다. 1780년(정조 4)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 의 가문은 경녕군(敬寧君)이라는 칭호로 반열(班列)에 속하였으며 남인(南人)의 지도층에 있었다. 1791년(정 조 15)에

대구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한. 1895년 3월 27일에 출생하여 1911년에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그 해 4월 8일 대구 대목구가 설정되고, 초대 대 목구장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의 노력으로 1941년 10월 3일 성 유스티노 신학교가 개교하면서 이 곳으로 옮겨와 공부를 마쳤다. 1922년 9월 23일 계산 (桂山

순교자. 세례명은 바오로. 본관은 전주(全州). 이윤하 (李潤夏)의 차남이며, 이경도(李景陶, 가롤로)와 이순이 (李順伊, 루갈다)의 동생이다. 어려서부터 천주교 신자 와 같이 교육을 받았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1801 년(순조 1)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형과 누나가 순교한 뒤 집안이 완전히 파산하였다. 과부가 된 어머니와 형수와 셋이 서울에서 몹
성녀.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아가타. 시골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떤 고자(鼓子)와 결혼했다가,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에게 청하여 그 결혼이 무효임을 인정받았다.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권진이(權 珍伊, 아가타)의 집에서 생활하던 중, 1839년 7월 17일 에 권진이 · 한영이(韓榮伊, 막달레나) · 여종 1명과 함 께 체포되었
평양교구 신부. 세례명은 안셀모. 1940년 3월 서울 동성상업학교 을조(소신학교)를 졸업한 후 덕원 신학교 고등과에 진학하였으며, 1947년 12월 27일 평양 관후 리 지하 성당에서 홍용호(洪龍浩, 프란치스코) 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하지만 건강이 여의치 않아 주교관에서 휴양하면서 조문국(趙文國, 바오로) 신부가 사목하던 기림리 본당 신자들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레오. 1918년 4월 11일 서울 중구 저동에서 이기헌(李驥憲, 바오로)과 노효갑 (盧孝甲, 마리아)의 5남 1녀 중 차남으로 출생. 계성보 통학교와 소신학교 과정인 동성상업학교 을조(乙組)를 마치고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연령 미달로 동기들보다 늦게 1941년 11월 21일 라리보(A. Larribeau, 元亨根)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요한. 일명 겸삼. 성 인 이광헌(李光獻, 아우구스티노)의 동생. 본관은 광주 (廣州). 명문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22세 때 형 이 광헌 가족과 함께 입교하여 교회 일에 매우 헌신적이며 열심이었다. 그리하여 입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전개하던 정하상(丁夏祥, 바오로) · 유진길 (劉進吉, 아우

춘천교구 신부. 세례명은 디모테오. 1909년 6월 9일 강원도 이천에서 태어 나 1922년 9월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 학하였다. 1936년 3 월 28일 사제 서품을 받고 강원도 풍수원 본당 보좌로 재임하 다가 1939년 7월 양양 본당 3대 주임으 로 전임되어, 1940년 2월 65평의 성당과 25평의 교육 회관 신축 사업을 마무리 지었다. 광복 후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일명 치문. 본관은 광주(廣州). 성녀 권희(權喜, 바르바라)의 남편이며, 성녀 이 아가타의 아버지. 성인 이광렬(李光 烈, 요한)의 형. 젊은 시절에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30세가 채 못 되어 천주교에 입교하여 지난날의 생활을 뉘우치고 천주의 가르침에 따라 신앙 생활을 하여 모든 사람의 모범이 되었다.
교황에 대한 순명을 외적 · 공적으로 거부하거나 신자 들과의 친교를 거부하는 것. 초대 교회 때부터 다양한 모 습으로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일치를 어렵게 만들었던 분열과 쟁론을 지칭한다. 이교를 의미하는 라틴어 "스키스마"(schisma)는 '갈라짐' 또는 '균열' 을 뜻하는 그리스어 "스키스마" (σχίσμα)에서 유래했다. 〔교회사적 의미의 형성과 역사
그리스도교나 유대교 또는 이슬람을 믿지 않는 사람들 을 가리키는 용어. '이교' (paganismus)란 용어는 본래 그리스도교 이전 시 대에 있었던 종교적 · 윤리적 체계, 특히 그리스 및 로마 문화의 다신교적이고 우상 숭배적인 체계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 용어가 교회 내에 도입되어 비그 리스도교와 그 신자들을 지칭하게 된 것이다. 1세기경에
순교자. 세례명은 바오로. 일명 성겸. 충청도 음성 고 을에서 태어나 충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했다. 천주교를 배우기 위해 경기도 양근의 권일신(權日身, 프란 치스코 사베리오) · 권철신(權哲身, 암브로시오) 형제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입교하였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외교인 선생이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1795년(정조 19) 을

19세기 초 · 중반 박학풍(博學風)의 실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규(伯揆). 호는 오주(五洲), 오주거 사(五洲居士) 또는 소운거사(嘯雲居士) 조부 덕무(德 懋, 1741~1793)와 부친 광규(光奎, 1795~1817)가 규장각 (奎章閣) 검서관(檢書官)을 지냄으로써 정조와 그의 가 문은 각별한 친분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그는 일찍 출세

대전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1927년 1월 12일 충 남 아산군 인주면(仁州面) 공세리(貢稅里) 193번지에서 태어나 소신학교 과정인 동성상업학교 을조를 거쳐 성신 대학 신학과를 졸업한 뒤 1958년 3월 19일 명동 성당에 서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집전으로 사제 서품 을 받았다. 구합덕 본당 보좌로 첫 사목 활동을 시작한 이규남 신부는 1

조선 후기 기호 남인 출신의 문신이요 대표적인 공서 계(攻西系) 인물. 본관은 전주로,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 을 지낸 봉령(鳳齡)의 손자요 지평을 지낸 제현(齊顯)의 차남. 자는 휴길(休吉). 호는 척암(瘠菴) 1777년(정조 원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789년의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을 거쳐 강제문신(講製文臣)에 선발되었으며, 사헌부 감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