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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헌 尹持憲(1764~1801)9

초기 교회의 신자.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윤지충(尹持 忠, 바오로)의 동생. 1764년 전주부 양양소면(良梁所 面)에서 아버지 윤경(尹憬)과 어머니 안동 권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를 따라 진산군 장구동(현 금산군 복수면 구례리)으로 이주했다가, 1791년 신해박해 이후 고산현(高山縣) 운동면(雲東面, 현 완주군 운주면 저구리) 으로 이사하여 매약(賣

윤형중 尹亨重(1903~1979)9

서울대교구 신부. 세 례 명 은 王文 마태 오 . 1903년 4월 29일 충 북 진천군 백곡면(栢 谷面) 용진동(龍津 洞, 용진골)에서 윤관 병(尹觀炳, 베드로) 과 고(高) 마리아의 5 남 2녀 중 차남으로 출생. 본관은 파평(坡 平). 1868년 수원에 서 첫 번째로 순교한 윤자호(尹滋鎬, 바오 로)의 증손. 1909년 경기도 안성읍으로 이사한 뒤 안법

윤형중 尹亨重(1903~1979)
윤회 輪廻 〔산〕saṃsāra9

태어남과 죽음이 끝없이 반복된다는 힌두교 및 불교의 교리. 〔어 의〕 윤회는 범어(梵語) 'saṃsāra' 의 번역어로 한역 (漢譯) 불교 경전에서 윤회 이외에 생사(生死), 생사윤 회(生死輪廻), 윤회전생(輪廻轉生), 유전(流轉), 윤전 (輪轉)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며, 영어로는 transmigration, metempsychosis, rebirth 등으

율리아 빌리아르 Julia Billiart(1751~1816)9

성녀. 나무르(Namur)의 노틀담 수녀회 설립자. 축일은 4월 8일. 〔생애와 활동〕 1751년 7월 12일 프랑스 피카르디(Picardie) 지방의 보베(Beauvais) 교구에 속한 퀴비이(Cuvilly) 라는 작은 마을에서 아버지 장 프랑수아(Jean Frangois Billiart)와 어머니 마리 루이즈 앙투아네트(Marie Louise Antoi

율리아 빌리아르 Julia Billiart(1751~1816)
율리아나 팔코네리아 Juliana Falconeria(1270~1341)9

성녀. 마리아의 종 수녀회 설립자. 축일은 6월 19일. 〔생애와 활동〕 율리아나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열심한 신자인 부모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마리아의 종 수도회' (Ordo Servorum Mariae : O.S.M.) 의 설립자 중 한 사람인 알렉시오 팔코네리아(Alexius Falconeria, 1200~1310)가 그녀의 숙부이

율리아나 Juliana(?~305)9

성녀. 4세기 초의 동정 순교자. 축일은 2월 16일. 〔생애 및 전설〕 수난기에 따르면, 소아시아의 니코메디아(Nicomediaia) 출신인 율리아나는 어린 소녀였을 때, 아버지 아프리카누스(Africanus)의 일방적인 뜻으로 이교도 청년인 에빌라수스(Eviasus)와 결혼하도록 약속되었다. 하지만 율리아나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이에 원한을 품은

율리아나 Juliana(?~305)
율리아노와 바실리사 Julianus et Basilissa(?~302?)9

성인들. 부부 순교자. 축일은 2월 16일. 〔생애와 순교〕 율리아노와 바실리사에 관하여 전해 오는 모든 성인 전기의 주요 원천인 그리스어 수난기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의 통치 기간 중에 이집트 중부의 도시인 안티노오폴리스 (Antinoöpolis)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B.H.G.970). 그런데 이를 《로마 순교록>

율리오 Julius9

① 율리오 1세(?~352) : 성인. 교황(337~352). 축일 은 4월 12일. 교황 율리오 1세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특히 그가 교황이 되기 전의 이력과 활동에 대해서는 더 더욱 없다. 그의 교황 재임 시기에 가장 뛰어난 업적은 아리우스주의 논쟁의 해결을 통해 로마의 위상을 높인 것이다. 이것은 매우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율리오 Julius
율법 律法9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구약성서의 처음 다섯 권인 모세 오경을 지칭하는 용어. 넓은 의미에서는 구약 성서 전체 를 가리키거나 고대와 현대의 유대교 문헌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용어와 의미〕 보통 율법(律法)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단어는 '토라' (תּוֹרָה)이다. 율법이라고 하면 다분히 법적인 측면만 강조되는 경향이 있지만, '토라' 라는 히브리어가 지

율법 학자 律法學者9

유대교에서 율법을 가르치는 평신도. 예수 시대에 율법 학자 중에는 상인과 장인들, 소수의 사제들과 레위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특히 사두가이파나 바리사이파적인 성향 중 어느 한 성향을 갖고 있었다. '율사' (律士) 또는 '율법 교사' 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용어와 의미〕 본래 기록되어 발송된 어떤 내용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소페르"(סֹפֵר)는 점차 '

율전동 본당栗田洞本堂9

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율전동 528-2 소재. 1988년 1월 22일 조원동(棗園洞) 본당에 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관 할 구역은 수원시 율전동 및 천천동 전 지역, 구운동 일 부(삼환 아파트) 및 화성군 반월면 입북 2리 지역. 〔교 세〕 1988년 1,548명, 1992년 3,360명, 1996년 3

율전동 본당
융만, 요제프 안드레아스 Jungmann, Josef Andreas(1889- 1975)9

예수회 신부. 전례학자. 〔생애와 활동〕 융만은 1889년 11월 16일 오스트리아의 티롤(Tiol) 주(州) 터이프스 근교에 있는 산드의 물방앗간 집안에서 태어났다. 1913년 브릭센 교구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4년 동안 보좌 신부 생활을 하였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신자들의 활기 없는 습관적인 신앙 생활을 기쁘고 능동적인 신앙 생활로 변화시켜야 하겠다

은사 (⇨ 대사, 교회법에서의)恩赦9
은산 본당 (⇨ 순천 본당)殷山本堂9
은수자 隱修者9

종교적인 이유로 사회를 떠나 은둔 생활을 하는 사람. 〔은수자와 독수자〕 그리스도교에서 은수자(eremita)는 '사막에서의 삶' 또는 '사막에 사는 사람' 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에레미테스" (ερεμίτης)에서 유래한 말인데, 이 는 '독수자' (獨修者, anachoreta)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은수 생활은 세속으로부터 철저하게 격리되어

은수자 隱修者
은율 본당殷栗本堂9

서울대교구 소속 침묵의 본당. 1902년 5월 장연(長 淵) 본당에서 분리 ·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무염 시태 성 모. 황해도 은율군(殷栗郡) 은율면(殷栗面) 남천리(南川 里) 소재. 〔교 세〕 1902년 573명, 1916년 946명, 1923년 808명, 1937년 1,229명. 〔역대 신부〕 초대 르 장드르(Le Gendre, 崔昌根) 루도비코(190

은율 본당
은이 隱里9

박해 시대 천주교 신자들이 이룩한 교우촌이요 공소 소재지. 현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용곡. '은이' 는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살던 '숨은 이들의 마을' 이라는 뜻이다. 바로 이웃에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 아) 신부가 자라난 골배마실 교우촌이 있으며, 문수봉 너머 남서쪽에는 한덕골 교우촌(현 용인군 이동면 묵리)과 미리내 교우촌(현 안성군

은자 隱者9

벼슬을 사양하고 숨어서 자기 뜻대로 살아가려는 사람. 이 용어는 공자(孔子, 기원전 552/551~479)가 《논어》 (論語) (微子) 편에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당시 사회를 개선하고자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던 공자는 은자들을 초(楚)나라 지역에서 많이 만났다. 편에 보이는 초광접여(楚狂接輿)와 장저(長沮) · 걸익 (桀溺)과 하조장인(荷蓧丈人) 등이 그

은총 논쟁 (⇨ 은총론)恩寵論爭9
은총 恩寵9

"하느님의 자녀(요한 1, 12-18), 입양 자녀(로마 8, 1417), 신성(神性)과 영원한 생명(2베드 1, 3-4)을 나누어 받는 사람이 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호의이며 거저 주시는 도움" (《가톨릭 교회 교리서》 1996항). 하느님의 구원 경륜 안에서 그분의 사랑을 통해 끊임없이 지속되는 놀라운 구원 사건

은총 恩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