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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어가 여러 가지 서로 다른 대상들에 대해서 완전히 동일한 말뜻(univocatio, 一義的)으로 언표되지 않으면서, 또한 이름만 같고, 이름과 연결되어 있는 뜻이 완전히 다른 방식(aequivocatio, 多義的)으로도 사용되지 않는 중간적인 단어 사용 방식을 말한다. [개념의 유래와 원천] '유비' 이란 용어의 어원인 그리 스어 "아나로기아" (αν
종교와 비슷하면서도 종교와는 구별되는 사회 현상이나 사회 집단을 일컫는 용어. 그러나 그 의미는 사용자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나타낸다. [종교 사회학에서 사용되는 학술적 의미] 종교 사회학 에서는 '종교' 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지만 종교와 마 찬가지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들을 일컬어 '유사 종교 . '대체 종교 (alternative religion) 또
죽은 이가 남겨 준 재산 혹은 앞 시대가 뒤의 시대에 물려준 사실이나 사물. 법적으로 유산은 주로 "세습 재산"을 일컫는 말이다. 교회법에서 규정하는 유산은 주로 사단 법인이나 재단 법인 등 공법인의 세습 재산에 관한 것으로써, 세습 재산에는 유형의 물적 재산과 무형의 정신적 재산이 있다. 정 신적인 유산에는 사단 법인이 지닌 무형의 재산으로써 수도회 창설
대구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1899년 4월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914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하여 1926년 5월 29일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고 함양 본당 4대 주임(1926. 5~1936. 6)으로 부임하였다. 통영(현 태평동) 본당(1936. 6~1941. 12)을 거쳐 거제 옥포 본당 2대
대전교구 소속 본당. 대전시 유성구 봉명동 568-1 소 재. 1965년 11월 25일 목동(牧洞) 본당 소속 유성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관할 구역은 봉명동, 장대동, 구암동, 상대동, 학하동, 죽동 전 지역과 공주시 반포면 일부 지역. (교 세] 1971년 445명, 1982년 787명, 1986년 751명,

정해박해(丁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라우렌시 오. 일명 순지. 충청북도 단양(丹陽)의 깁근골[깊은골의 오기인 듯함. 현재 단양군 내 대강면(大崗面) 신구리(新邱里)와 어상천면(魚上川面) 임현리(任縣里)에 깊은골이라 불리는 마을 이 있음]에서 살았다. 1827년 정해박해가 일어나자 경상 도에 살던 친척과 그 도에 살던 신자 여럿이 그의 집으로 피신해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도미니코. 1918년 1월 12일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모현면 (慕賢面) 오산리(吳山里) 44번지에서 전주에 본관을 둔 유옥균(柳玉均, 요한)과 오발발라 (吳發發羅, 바르바라)의 열두 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외가쪽으로 모친을 비롯하여 조모 · 증조모 고조모들이 모두 세례명으로 호적에 등재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의 가문은

성인들. 4세기 초의 순교자들. 축일은 9월 26일. [전설 및 순교]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치프리아 노는 본래 안티오키아에서 살던 이교도로서 잡귀신들을 불러 마술을 부리는 마법사였다고 한다. 그는 잡귀신들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도교 신자인 동정녀 유스티나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유스티나는 십자가의 표지로 마귀들의 공격을 막아 내었다. 이에 굴복한 치프
성인. 교부. 순교자. 2세기 호교론자들 중에 가장 뛰어 난 신학자. 축일은 6월 1일. [생 애] 유스티노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없지 만, 《트리폰과의 대화》(Dialogue with Trypho the Jew)에 묘 사되어 있는 입교 과정과 그에 관한 순교록을 통해 어느 정도의 골격을 잡을 수 있다. 그는 100~110년 사이에 팔레스티나의 사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유스티니아누스 1세(Justinianus I , 527~565)의 후원으로 편찬된 법전. 정식 명칭은 《시 민법 대전》(Corpus Juris Civilis)이다. [제정 배경]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동로마 제국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에 문화적 특성을 뚜렷하 게 발휘하게 되었다. 비록 그의 업적이 시대에 따라 달리 평가되

아직 철이 들지 않아 스스로 신앙을 고백하지 못하는 연령의 어린아이에게 베푸는 세례. [교회의 가르침과 의미] 유아 또는 어린이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는 오늘날에 제기 된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교회의 역사는 유아 세례가 무효임을 주장하고 밝히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음을 전해 준다. 반면, 오리제네스(185~253)는 "교회는 사도들

죽음에 임하여 남기는 말. 사람이 자신의 사망으로 효 력을 발생시킬 목적으로, 일정한 방식에 따라 하는 일방 적 의사 표시. [구약성서] 구약성서에는 중요한 인물들의 유언이 수록되어 있다. 즉, 야곱(창세 49장), 모세(신명 33장), 여호 수아(여호 23-24장), 다윗(1열왕 2, 1-10 ; 1역대 28-29장), 마따디아(1마카 2. 49-70),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한. 일명 한주(漢柱) . 1906년 12월 7일 충청남도 아산군 인주면 공세리에서 태어나 당진군 신평면 매산리에서 성장하였다. 1932년 12월 17일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후에 1933년 1월 12일 황해도 장연 본당의 보좌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후 수원(현 북수동) 본당 3대 보좌 (1933.

종교 사상가. 호는 다석(多夕). 1890년 3월 13일 서울에서 유명근(柳明根)의 아들로 태어난 유영모는 1905년 YMCA 총무 김정식(金貞植)의 인도로 연동 교회(蓮洞敎會)를 다니게 되었다. 1907년 경신학교(儆新學校)를 졸업한 후 1909년 양평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10년 이승훈(李昇薰)의 초빙으로 평북 정주 오산학교(五山學校)에서 2년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본관은 강릉 (江陵). 1898년 1월 19일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오산리 (吳山里) 사기막골에서 태어났다. 일설에는 유재옥 신부가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왕림동(旺林洞)에서 태어나 어 릴 때 부모를 따라 용인으로 이사하였다고도 한다. 유재옥 신부는 향리에서 서당에 다니다가 용산 예수성 심신학교에 입학하여 철학 · 신학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베드로. 평안 남도 대동군(大同郡) 율리면(栗里面) 답현리(沓峴里, 일 명 논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짚신 을 팔아 겨우 살아갔다. 그의 나이 30여 세인 1864년경 에 천주교를 알게 되면서 즉시 서울로 올라와 베르뇌 (Berneux, 張敬一)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고 베드로라는 본명을 얻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