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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938년 성 베네딕도 수도회 덕원(德源) 수도원에서 발행한 성가집. 저자 겸 발행자는 동 수도회 소속으로 당시 원산 본당의 주임 신부로 있던 피셔(Wolfram Fisher, 陳道光) 신부이고, 독일 계통의 성가 가사를 우리말로 옮긴 이는 원산 해성학교(海星學校) 교장이던 오병주(吳秉柱). 초판은 12×17.5cm의 크기에 총 278쪽. 초대 원산교구
한국 교회 최초의 오르간 반주용 혼성 4부 합창곡 성가집. 1948년 이문근(李文根) 신부가 편집하여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의 전신) 음악부에서 발행한 것으로 총 117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는 한국어 성가와 함께 라틴어 발음을 한글로 옮긴 그레고리오 성가, 그밖에 새로운 외국 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복자 찬가 와 '혼배 미사곡' 등 이문근 신
① 1930년대 연길교구에서 소년 · 소녀들을 위해 발행하던 월간지. 1931년 간도 용정 본당(龍井本堂)의 소년회인 '타르치시오회' 에서 창간한 가 그 전신이다. 이 회는 1930년에 창설되었으며, 다음해 랍(K.Rap, 朴) 신부에 의해 대령동 본당(大領洞本堂)에서 제1회 연길교구 소년 연합 대회가 개최되면서 전교구 단체로 성장하였다. 《가톨릭 소년》은

1934년 1월 평양교구에서 창간한 종교 교양 월간지. 편집 책임은 홍용호(洪龍浩) 신부가, 편찬 실무는 주로 김구정(金九鼎)이 담당하였다. 창간 당시의 제호는 《가톨릭 연구 강좌》(硏究講座)였고, 발행소인 가톨릭연구사(研究社)는 평양 관후리 본당(館後里本堂) 사제관에 있었다. 그러다가 1934년 3월 편집실을 서포(西浦) 소재 교구 관리소 건물로 이전하면

서울교구 산하 '가톨릭청년사' 에서 발행하던 종교·교양 월간지. 1933년 6월 10일 창간호가 간행된 이래 두 차례에 걸쳐 폐간과 복간을 거듭하다가 1971년 8월 《창조》(創造)로 개제되었다. 이 잡지의 발간은 1933년 3월 6일 개최된 전국 5개 교구 주교 회의에서 '5교구 출판 위원회' 를 구성함과 동시에 그 위원장으로 서울교구장 라리보(Larib

1939년 9월 김후생(金後生, 바오로) 신부가 저술한 거제도 천주교회사. 19×25.5cm 크기의 필사본으로, 분량은 61쪽.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책 표지에는 위의 제목 옆에 '거제도 천주교 약사(略史)' 라는 제목이 부기되어 있다. 김후생 신부는 1926년에 설립된 옥포 본당 (玉浦本堂, 일명 真木亭本堂)의 초대 주임으로 재임하던 중에 이 책을 저술
중국에서 활동하던 예수회 선교사 디아즈(Diaz, 陽瑪諾)가 한역한 신심서. 1640년 북경에서 2권으로 간행되었다. 원본은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1380~1471)가 라틴어로 저술한 《그리스도를 본받음》(Imitatio Christi) 4권으로, 《경세금서》는 그중 1, 3권만을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이 처음 간행되었을 때에는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발행하는 종합 월간지.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 잡지 가운데 하나로, 1906년 10월 19일 한국 천주교회에서 창간한 의 부록인 〈보감〉(寶鑑)이 그 전신이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이 한일합병 이후 순전히 종교적인 신문의 발행만을 강요한 총독부의 압제로 인해 1910년 12월 30일 폐간되자, 1911년 1월 15일 그 부록인 을 격주

예수회 소속 중국인 신부 은정형(殷正衡)이 역편(譯編)한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 약사. 1879년 10권 5책으로 편찬되었고, 1900년 중경(重慶) 공의서원(公義書院)에서 5권 2책으로 간행되었다. '고려주증' 이란 '조선(고려 : Corée)의 순교자들이 천주를 증거한 내용' 이란 뜻이다. 그 번역의 대본이 된 것은 샤를르 달레(Ch. Dallet)가 저

예수회 소속 중국인 신부 심칙관(沈則寬)이 역편(譯編)한 한국 천주교회 약사. 1900년 중국 상해 자모당(慈母堂)에서 1책으로 간행되었고, 1927년 상해 토산만(土山灣)에서 3판이 간행되었다. 이 책의 제목을 '고려치명사략' 이라고 한 이유는 조선(고려 : Corée)의 천주교회사가 주로 치명사(致命史)로 이어지고 있고, 또 역자가 이를 중심으로 원문의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us, 354~430)의 자서전. 방탕한 청년기를 보내고 마니교도였던 아우구스티노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기까지의 참회 생활을 46세 되던 400년(?)에 기록한 내용으로, 비록 자서전이라고는 하지만 그 신학 체계가 매우 탁월한 작품이며 총 13권으로 되어 있다. 〔내 용〕 자신에 대한 기록 10권과 성서에 대한 해석 3

중국에서 활동하던 예수회의 선교사 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 南懷仁)가 1672년(康熙 11)에 저술한 세계 지리서. 1674년 북경(北京)에서 상 · 하 2권으로 간행되었으며, 상권에는 지리 통론적인 내용을, 하권에는 세계 인문 지리와 해양 지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간행하면서 세계 지도인 (坤輿全圖)를 작성하여

1928년 대구 남산동 본당(현 계산동 본당)에서 발행한 성가집. 발행자는 당시 본당 주임이던 델랑드(Louis Deslandes, 南大榮) 신부이고, 책의 크기는 15×22cm에 총 128쪽. 본래 이 성가집은 1927년 12월 해성(海星) 보통학교 학생들이 성탄 행사를 위해 제작한 것을 이듬해 등사본으로 간행한 것이지만, 그 내용에서 볼 때 학생들만의
덕원(德源)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간행한 교리 교사 용 교리서(敎理書). 모두 3권으로 편찬되었으며, 그중 1 권 신조(信條) 편은 1942년에, 3권 성사(聖事) 편은 1943년에 간행되었다. 그러나 2권 계명(誡命) 편은 현 재 전하는 자료가 없어 그 간행 여부를 자세히 알 수 없 으며, 1949년 셋째 권을 인쇄하던 중 북한 공산군의 습 격을 받았다
미국 북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교구장 기본스 (James Gibbons, 1834~1921) 추기경이 저술한 호교론서 (護敎論書). 1876년에 간행되었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1944년 장면(張勉) 번역으로 초간된 이래 현재까지 계 속 중간되고 있다. 책의 구성은 서문 · 본문 · 부록 등 크 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 중 서문에
중국에서 활동하던 예수회의 선교사 페르비스트(F. Verbiest, 南懷仁)가 저술한 천주교 교리서. 1670년(康熙 9) 북경(北京)에서 한 권으로 간행되었다. 페르비스트는 벨기에 출신으로 1659년 중국에 입국하였으며, 1660년 청(淸) 강희제(康熙帝)의 명으로 북경에 들어가 천문 · 역산 연구에 참여하였는데, 이때 《교요서론》을 저술하였 다. 이 책

중국에서 활동하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가 저술한 서양 윤리서. 리치가 명말(明末) 의 건안왕(建安王)을 위해 저술한 것으로, 서양인들의 우정과 사고(思考)에 대한 개념을 간결한 대화체로 서술 하고 있다. 1595년(萬曆 23) 풍응경(馮應京)과 구여기 (瞿汝夔)가 서문을 붙여 남창(南昌)에서 1권 1책으로 간행하였고,

교황청에서 1년에 한 번 간행하는 공식 간행물. 어떤 조직체이든지 조직체 내 각 기능의 역할과 현황은 매우 중요한 일로서 연감은 바로 한 해 동안의 인적 자원, 물 적 자원, 주요 기관, 통계 자료, 전망 등을 수록하여 한 해에 한 번씩 내는 정기 간행물이다. 교회 안에서 체계적 인 통계 자료 모음의 선구자는 바움가르텐(Paul Maria Baumgarte
법률적인 의미에서의 법전' (codex)은 질서 정연하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배열된 법률들의 집합체를 뜻한다.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적인 공동 체로서의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동시에, 볼 수 있는 교계 제도로 조직된 사회이다. 일반 사회 공동체가 그 조직과 구성원들 사이를 조정함으로써 사회가 목적하는 바를 달 성하기 위한 여러 가지 규범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