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5

한성희 (1937~1981)韓星熙12

대구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디오니시오. 1937년 9월 22일 강원도 횡성군 횡성면 가담리 467에서 한성순과 이필성(데레사)의 아들로 출생. 1962년 12월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12월 21일 대구 계산동 주교좌 성당에서 서정길(徐正吉, 요한) 대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삼덕동과 고성동 본당의 보좌 신부를 역임한 후 1964년 8월

한신애 (?~1801)韓新愛12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아가타. 충청도 보령에서 양반의 서녀(庶女)로 태어나 장성한 뒤 조시종(趙時鍾)의 후처로 들어가 살았다. 그러다가 1795~1796년경 여회장 강완숙(姜完淑, 골롬바)의 전교로 천주교 신앙을 알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전처의 딸인 조혜의(趙惠義)와 함께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한신애는 이후 강완숙의 집을 왕래하

한신애 (?~1801)
한아기 (1792~1839)韓阿只12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 성녀.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바르바라. 당시의 교우들 사이에는 '순길의 모친'으로 알려졌다. 서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모친에게 교리를 배웠으나 열심히 수계하지 않았으며 결혼도 비신자와 하였다. 그러나 우연히 친정에 들렀다가 김업이(金業伊, 막달레나)를 만나 다시 교리를 배운 뒤로는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다. 그러다가 3

한아기 (1792~1839)
한역 서학서漢譯西學書12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까지 중국에서 그리스도 신앙 선교에 종사하던 가톨릭 교회의 신부들이 천주교를 전하는 한편 서양과 서양 문명을 전수하기 위하여 한문으로 엮어 펴낸 서양과 서양 문화에 관한 서적과 저작물들. 〔저술의 동기와 목적〕 중국 선교에 나선 천주교의 서양 성직자들이 한역 서학서를 저술하여 펴낸 근본 동기는, 중국 사회가 서양 못지않은 오랜 역

한영이 (1784~1839)韓榮伊12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 성녀.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막달레나. 성녀 권진이(權珍伊, 아가타)의 모친. 가난한 비신자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성장한 뒤 권 진사(進士)라는 비신자와 혼인하여 딸 권진이를 두었다. 비신자였던 남편 역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함께 교리에 따라 살다가 대세를 받고 죽었다. 과부가 된 한영이는 딸 권진이와 함께 교우 집에 부

한영이 (1784~1839)
한원서韓―12

(⇨ 한재권)

한윤승 (1911~1949?)韓允勝12

연길교구 신부. 세례명은 필립보. 1911년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났으며 11세 때인 1921년 11월 서울 백동의 베네딕도회 소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930년 6월 소신학교를 졸업한 뒤 덕원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이곳에서 철학반과 신학반을 마친 후 1936년 6월 7일 사우어(B. Sauer, 辛上院) 주교의 집전으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곧바로 목단강 본

한이형 (1799~1846)韓履亨12

병오박해(丙午迫害) 순교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라우렌시오. 회장. 일명 '병심'. 충청도 덕산(德山)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13세 때 입교하였고, 이후로 진실한 통회의 삶을 살면서 신심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였다. 20세 때 교우 처녀와 혼인한 후 경기도 양지(陽智)의 은이(현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로 이주해 살면서 빈궁한 이들에게

한이형 (1799~1846)
한재권 (1836~1866)韓―12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요셉(혹은 베드로). 본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원익(元益, 혹은 원여). 아버지 한언적(韓彥蹟, 도미니코)과 어머니 성주 배씨의 맏아들로 1836년(혹은 1829년) 충청도 진잠(혹은 금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앙을 접한 그는 장성한 후 서 막달레나와 혼인하였으며, 회장 소임을 맡기도 하였다. 부친 및 형제들과

한재권 (1836~1866)
한정흠 (1756~1801)韓正欽12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스타니슬라오. 전라도 김제의 가난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전주에 살던 먼 친척 유항검(柳恒儉, 아우구스티노)의 집으로 가서 아이들의 스승이 되었다. 이후 유항검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한 한정흠은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는 한편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제사를 폐지하였고, 1795년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가 전주를

한정흠 (1756~1801)
한창우 (1910~1978)韓昌愚12

언론인. 교육자. 세례명은 베네딕도. 1910년 5월 15일 충청남도 아산군 인주면 공세리에서 한규동(韓奎東, 요한)과 김창옥(金昌玉, 바르바라)의 장남으로 출생. 아산공립보통학교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1년 4월 수원고등농림학교(현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대학)에 입학, 1934년 3월에 졸업하였다. 이어 4월에 동성상업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박물(博物)

한창우 (1910~1978)
한치수 (1820~1866)韓―12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한치원(韓致元, 알렉시오)의 동생. 홍주 사람으로 양성 미리내에 살다가, 박해를 피해 직산 용촌으로 이사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회장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였고, 페롱(S. Féron, 權) 신부와 오메트르(P. Aumaître, 吳) 신부가 그의 집을 방문하여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기도 하였다. 한편 1866년

한치원 (1810~1872)韓致元12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알렉시오. 한치수(프란치스코)의 형. 홍주 사람으로 직산으로 이주하여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1838년경 이웃 마을의 윤평심(尹平心)에게 교리를 배우고, 다블뤼(M.N.A. Daveluy, 安敦伊) 주교와 오메트르(P. Aumaître, 吳)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아들에게 전교하는 등 전교와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한티12

초기 교회 유적지이자 순교 사적지.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득명동 5 소재. 대구에서 북쪽으로 24km쯤 떨어진 팔공산과 가산 사이 깊은 산간 지대에 자리잡은 한티는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신앙을 간직하던 유서 깊은 곳이다. 또한 이곳은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순교한 조 가롤로, 최 바르바라, 조아기, 서태순(베드로)의 묘와 무명 순교자

한티
할라카12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서 지켜야 할 일상적 규범들을 소개하는 랍비 문헌. 또는 랍비들이 기록이나 구전된 율법을 유권적으로 해석하여 후대에 전수한 규범들과 결정들. 이처럼 할라카는 법적인 것과 상관 없는 내용, 즉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가르침, 신학적 사고, 전설이나 민담, 삶의 지혜를 보여 주는 금언들, 기도, 역사적 자료들, 이스라엘과 성지에 관한 찬양들,

할라카
할렐루야12

(⇨ 알렐루야)

할례割禮12

남자 성기 끝의 살가죽을 정해진 의식에 따라 잘라내는 행위.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아니라 바빌론인과 아시리아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대 셈족, 이집트인, 그리고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의 여러 종족들도 할례를 하였으나 인도 · 유럽어계와 몽골어계, 우랄어계 민족들 사이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일부 민족들은 여자에게도 할례를 행하는데, 이는 성서

할례
함무라비 (?~기원전 1750)12

아모리인(Amorrhaei)들이 세운 바빌로니아(Babylonia) 제1왕조의 6대 왕(기원전 1792~1750). 성서의 계명이나 법과 유사한 내용을 모아 당시 가장 합리적인 법전인 '함무라비 법전'을 제정하였다. '함무라피'(Hammurapi)라고도 표기한다. 〔생 애〕 함무라비의 자서전적 증언에 따르면, 하늘의 신인 아누(Anu)와 공기의 신인 엔릴(

함무라비 (?~기원전 1750)
함무라비 법전―法典12

(⇨ 함무라비)

함백 본당咸白本堂12

원주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 5리 188-2번지 소재. 1963년 9월 29일 영월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미카엘 대천사. 관할 구역은 정선군 신동읍, 영월군 중동면 석항리, 연상리(화원리)이며 관할 공소는 예미, 자미원 2개소. 〔교 세〕 1963년 550명, 1970년 700명, 1975년 889명, 1980년 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