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5

허계임 (1773~1839)許季任12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 성녀.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막달레나. 성녀 이정희(李貞喜, 바르바라) · 이영희(李英喜, 막달레나) 자매의 모친이요 성녀 이 바르바라의 외조모, 성녀 이매임(李梅任, 데레사)의 올케. 경기도 용인(龍仁)의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경기도 시흥 봉천(奉天, 현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의 비신자인 이씨와 혼인한 뒤, 중년에 이르러

허계임 (1773~1839)
허균 (1569~1618)許筠12

조선 중기의 문신. 우리 나라 최초의 국문 소설인 《홍길동전》의 작가. 조선 시대 여류 문인으로 유명한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의 동생.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 성소(惺所) 등 몇 가지를 사용하였다. 학자, 문장가로 이름 높던 허엽(許曄)의 3남 2녀 가운데 막내 아들로 26세인 1594년 정시 문과(庭試

허무주의虛無主義12

인식과 윤리 문제에 대하여 객관적 토대가 될 수 있는 어떤 존재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철학적 태도. 허무주의라는 표현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철학적 입장들, 예를 들어 인식론적 개인주의(獨我論, Egoismus)나 유아론(唯我論, Solipsismus), 관념론, 무신론, 범신론, 유물론과 염세주의뿐만 아니라, 이러한 것들과 관련된 종교적 · 정치적 · 문학적

허영虛榮12

어리석고 속이 비고 쓸모 없는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것. 즉 허풍, 뽐냄, 우쭐댐, 위선, 허세, 자기 선전, 자기 현시, 과장, 겉치레, 인기 관리와 명예, 명성, 타인의 호평에 대한 무절제한 추구 등의 자기 애착, 자아 도취, 자기 우상화의 경향성을 의미한다. 다른 이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기본 심성 중 하나이다. 인간이 영광을

허영
허원許願12

(⇨ 서원 ; 수도 선서)

허인백 (1822~1868)許仁伯12

순교자. 세례명은 야고보. 경상남도 김해 사람으로, 언양으로 이사하여 살았다. 24세 때 황사극을 통해 입교하였고, 입교 후 부인 박조예와는 방을 따로 쓰며 남매처럼 지내는 등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였으며, 가난한 사람을 도와 주고 병든 이를 돌보아 주는 등 애긍(哀矜)에도 힘을 쏟았다. 1860년 경신박해(庚申迫害)가 발발하자 언양관에 체포되었다가 경주

허일록 (1903~1964)許日錄12

전주교구 신부. 세례명은 타대오. 1903년 5월 1일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1929년 5월 25일에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계산동 성당에서 뮈텔(G.-C.-M. Mutel, 閔德 孝)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어 곧바로 제주 홍로(현 서귀포) 본당 8대 주임으로 임명되어 첫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고, 1933년 5월에는 능교리(

허일록 (1903~1964)
허임 (1795~1840)許―12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바오로. 훈련도감(訓鍊都監)의 군사로 가족들과 함께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다가 1839년에 체포되었다. 처음에는 형벌을 잘 참아냈으나 혹형을 이겨내지 못하고 배교하였다. 그러나 곧 자신의 배교를 철회하고 굳게 신앙을 다짐하였으며, 형리가 배교 철회의 표시로 감옥에 있는 오물통에서 인분 한 사발을

허임 (1795~1840)
헌금獻金12

미사 중 성찬 전례의 시작인 예물 준비 때에 신자들이 바치는 봉헌금. 초대 교회에서 성찬 전례에 사용되는 빵과 포도주 및 교회 유지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필요한 물건들을 바치던 것이, 현재는 현금으로 대신되고 있다. 헌금은 하느님께 바치는 감사의 표시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어려움에 처해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바치는 희생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헌장憲章12

(⇨ 교황 문서)

헝가리12

중부 유럽에 위치한 내륙 국가. 공식 명칭은 헝가리 공화국(Magyar Köztársaság)이다. 지리적으로 북위 45~48도, 동경 16~22도 사이에 위치하였으며, 국토는 동서로 528km, 남북으로 320km에 걸쳐 있고, 면적은 93,030k㎡로 남한과 비슷하다. 동쪽으로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서쪽으로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 및 크로아티아, 남쪽

헝가리
헤겔,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1770~1831)12

독일 철학자. 그리스도교적인 계시까지 포함한 총체적 실제를 절대적 · 변증법적 이성의 체계 속으로 통합하는 독특한 인식 유일주의(認識唯一主義)적인 사고로 독일 관념론을 완성시켰다. 피히테(J.G. Fichte, 1762~1814)의 주관적 관념론과 셸링(F.W.J. von Schelling, 1775~1854)의 객관적 관념론의 모순과 대립을 매개하여 통일

헤겔,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1770~1831)
헤라클레이토스 (기원전 541/535?~475)12

이오니아 학파(Schola Ioniae)에 속하는 그리스 철학자로, 조화로운 우주의 기본적이며 물질적인 원리가 불〔火〕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철학 학파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고,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기원전 610~546),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기원전 588?~528), 피타고라스(Pythagoras, 기원전 580?~50

헤라클레이토스 (기원전 541/535?~475)
헤로데 (기원전 70~4)12

로마 제국이 임명한 유대 왕국의 왕(기원전37~4). 기원전 70년경 이두매아의 귀족 가문에서 4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헤로데의 주된 세력 기반은 로마 제국으로, 당시 삼두 정치에 수반된 권력 다툼으로 로마의 최고 통치자가 바뀔 때마다 원만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여 오랜 기간 동안 유대를 다스릴 수 있었다. 유대인들의 왕통을 이어받기 위하여 하스모네

헤로데 (기원전 70~4)
헤로데 아그리빠 (기원전 10~서기 44)12

헤로데 대왕(Herodes Magnus, 기원전 37~4)의 손자. 서기 37~44년에 팔레스티나 일대를 다스린 로마 제국의 영주(領主, Tetrarcha). 사도 행전 12장 1절의 기록을 바탕으로 '헤로데 아그리빠'라고 불리지만, 그의 아들 아그리빠 2세의 이름으로 미루어 보자면 본명은 '마르쿠스 율리우스 아그리빠'(Marcus Julius Agripp

헤로데 아그리빠 (기원전 10~서기 44)
헤로데 안티파스 (기원전 21~서기 39)12

헤로데 대왕(Herodes Magnus, 기원전 37~4)의 아들. 기원전 4~서기 39년까지 갈릴래아와 베레아(Perea) 일대를 다스린 영주. 기원전 23년경 헤로데 대왕과 사마리아 출신의 말타케(Malthace) 사이에 태어났다. 영토를 크게 늘리지는 못하였으나 헤로데 대왕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비교적 순탄하게 다스렸다. 문헌이나 동전 출토품에는

헤로데 안티파스 (기원전 21~서기 39)
헤르더, 요한 곳프리트 폰 (1744~1803)12

신인문주의(Neuhumanismus) 혹은 독일 인문주의 철학자. 신학자. 비평가. 관심 분야가 넓고 박학다식하여 문화, 종교와 역사, 언어학, 인류학, 교육학, 심리학, 문예학 등의 영역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설교가, 교육자, 역사 철학자, 시인, 민요 수집가, 언어 철학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질풍 노도'(der Stu

헤르더, 요한 곳프리트 폰 (1744~1803)
헤르마스 (?~?)12

사도 교부. 헤르마스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의 유일한 저서인 《목자》(Pastor)의 내용과 다른 교부들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노예였으나 해방되어 자유인이 된 후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장사를 하였고, 박해 시기에 모든 재산을 잃은 것 같다. (Fragmentum Muratorianum)에 따르면 교황 비오 1세(142~1

헤르만, 솔라누스 (1909~1950)12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사. 세례명은 루돌프(Rudolf). 수도명은 솔라노. 1909년 5월 19일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교구에 속한 일러베르크(Illerberg) 근처인 탈(Thal)에서 태어나, 1931년 3월 도장 도제(塗裝 徒弟, Maler-geselle)로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간 법정 수련

헤르만, 솔라누스 (1909~1950)
헤르몬 산―山12

시리아와 레바논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해발 2,814m의 고산. 〔위치와 풍토〕 안티레바논(Anti-Lebanon) 산맥의 남쪽 끝에 위치하였으며 시리아-아프리카 대지구대가 생성될 당시에 솟아오른 산으로, 길이는 50km이며 가장 넓은 폭은 남쪽의 25km이다. 지질은 주로 쥐라기에 생성된 석회암이고, 백악기층이 일부 있다. 북동-남서 축으로 뻗었으며, 침

헤르몬 산